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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고 – 작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

2022. 4. 1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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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고 – 작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고

“세상엔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오감으로 느끼고 태어난 것에 감사하게 되는 일, 나를 빚어 생을 선사한 이에게 감사하게 되는 일, 여행이란 다름 아닌 이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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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

정은애 작가님의 책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고>는 여행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코로나라고 하는 특수상황 때문에 길이 막혀 슬퍼하는 이들에게, 또는 코로나와는 무관하게 한 번쯤 여행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내심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늘 선뜻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있어 마치 먼저 손을 내밀어 이국적인 또는 미지의 세상을 같이 여행해 주는 친구 같은 책입니다.

 

11년 전의 인도, 지금도 많은 여행자들이 '인도'하면 혀를 내두르지만, 당시의 인도는 그야말로 한바탕 요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마트폰 없이 지도로 길을 찾고, 메일과 싸이월드를 확인하려 인터넷 카페를 기웃거리던 시절이었다. p.14

 

개인적으로 두 번째에 해당하는 선뜻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 책의 첫인상은 강렬했습니다. 나와 다름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으니까요. 혼돈 속에 자기 자신을 던지는 것은 사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첫 여행지인 인도에서의 이야기를 읽으며 난 과연 선뜻 인도로 떠날 수 있을까? 인도에 가서 저 혼돈을 저자처럼 즐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가게 됩니다.

2. 함께 여행을 떠나 주는 작가

여행 에세이로서 이 책이 주는 의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황하면서도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을 경험한 소중한 친구’에게 이끌려 마음 맞는 여행을 같이 즐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내 인생의 여행에서 이 친구와 어떤 부분이 같거나 비슷하고 또 어떤 부분이 달랐는가?’를 스스로 돌이켜 보며 잊고 있던 나만의 여행을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진실로 아름다운 존재는 관심을 구걸하지 않는다.
-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中 –

 

정은애 작가님의 책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고>를 읽으면서 책 전반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저 대사였습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나온 대사로 실제 자막에서는 조금 더 순화된 표현을 쓰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드는 번역은 바로 “진실로 아름다운 존재는 관심을 구걸하지 않는다.” 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 정은애는 ‘나긋나긋하고 포근하면서도 그 안에 단단한 토대가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정은애 직가님이 직접 찍은 여행 사진


글 속에서 자신만의 고민과 불안, 걱정 같은 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내비치면서도 결코 약해 보이거나 불안정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그 또한 이 사람의 한 부분이구나 정도로 느껴질 만큼 안정적입니다. 어쩌면 자기 중심이 있고 성숙한 인격이란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빨래방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고는, 젤라또를 먹으며 마을을 찬찬히 둘러본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오후의 분위기. 이 평원의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결코 시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마을에 서린 옛 기운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몰래 온 손님처럼 마을을 살짝 엿보고 가게 했다. p. 24

 

산과 호수, 초원과 평 야가 번갈아 나오는 것을 보다가 아침이면 창밖으로 얼음바다가 펼쳐지는 풍경을 본다. 이토록 많은 것들로 가득한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풍경을 응시한다. 사람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지역. 아름답지만 너무 높아 모두가 지나쳐가는 땅, 높아서 고독할 수밖에 없는 땅이라니. 까마득한 곳에 앉은 신은 홀로 외로울 수도 있을까. p.214


이 책에는 살면서 가 보기는커녕 사진조차 본 적 없는 여행지가 막연하게나마 이미지로 떠오르게 해 주는 문장이 가득합니다. 마치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정은애 작가님과 함께 여행지의 공기를 마시고 같이 거닐며 커피나 와인을 같이 마신 것만 같습니다.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이건 차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제가 쓴 책 <회사가 내 월급을 훔쳐갔다>는 원래 에세이로 기획된 책입니다. 출판사와 제작 미팅을 할 때는 분명 에세이에 중간중간 짧은 지식 카드가 들어있는 그런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시작은 분명 에세이였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수험서… 가 아니라 노동법 실무 서적이 되는 바람에 에세이 포기하고 그냥 실용서적으로 급선회해서 지식 전달을 위한 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다시 한번 에세이는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잊고 있던 나만의 여행

그러고 보니 저도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일상에 지쳐 기억 구석 어딘가에 묻혀있어서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었네요. 친동생과 함께 한 노르웨이 여행은 사실 많은 추억을 쌓은 여행이었습니다.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독일에 가서 다시 독일 국내선 비행기를 2시간 타고 거기서 크루즈를 또 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거리. 짐이라고는 텐트 하나와 독일에서 산 생필품들뿐. 독일 화장실에서 다멘(Damen)과 헤렌(Herren) 사이에서 고민하다 헤렌은 뭔가 여자 이름 같고 다멘은 men이 들어있으니까 다멘(Damen) 쪽이 남자 화장실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문을 열었지만 안에 있던 여성분과 눈이 마주친 순간의 그 당혹스러움. 알고 보니 다멘이 여자화장실이었던 중격.

차 안에서 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아름다운 한 폭의 유화 같은데, 차에서 내리면 얼어 죽을 것 같은 날씨. 2주 동안 숙소는 오직 캠핑장에서 텐트. 밤이면 크루즈 면세점에서 산 글렌피딕 위스키를 마시고 낮에는 노르웨이에서 유명한 트레킹 코스를 가거나 캠핑 의자에 앉아 독서. 온수 샤워는 유료라서 꿈도 못 꾸고 왕복 11시간이 걸리는 트레킹을 좀비처럼 기어 올라갔지만 도저히 자리를 비켜 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중국인 관광객의 무한 사진 촬영을 보다 지쳐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내려온 트롤퉁가. 백야에 반해 밤을 지새운 어느 날. 자키는 이 하나 없는 무인 주차장에 심지어 요금 결제하는 자판기는 출구에 있지도 않은 그곳에서 누구 하나 몰래 나가는 법 없이 주차료를 내고 나가는 사람들.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고>를 읽으며 참 신기하게도 정은애 작가님과 책 속의 여행지를 함께 여행하는 동시에 잊고 있던 나의 여행 이야기도 떠오르게 됩니다. 마치 이 책을 통해 나도 이런 여행을 했고, 이런 일들이 있었노라 작가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4.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간다. 

아마 그 누구도 이렇게까지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우리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잠시 조심하고 몸을 사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뭐였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끔은 어딘가 망가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늘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은 과거의 어떤 후회와 미래의 막연한 불안감을 짊어진 채 걸어가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겉으로 드러내느냐, 드러내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각자의 인생에서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불안은, 어느 순간에는 차라리 그 한가운데로 뛰어들어버리고 싶게도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내 손으로 터뜨리고 자멸하는 상상을 하며 현실을 위안할 때면 나는 에라 모르겠다, 찌르고, 찌르고, 또 찔러 죽이고, 목을 졸라 죽이고, 온갖 폭력을 쏟아부어 내 손으로 끝장을 내고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꿈에서 깨어나곤 했다. p.71

 

사법고시에 떨어지고 이제는 취직을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 특이하게 초등학교 학생 기록부를 요구하는 일부 공기업들이 있어서 떼 본 학생 기록부에는 초등학교 6년간 장래희망에 법조인과 판사가 써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사법고시를 포기한 29살까지 내 인생에서 목표와 꿈은 늘 그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결과가 좋은 시험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시험도 있었지만 일말의 변명, 좀 더 최선을 다 할 걸.이라는 후회가 남았기에 다시 한번 더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해, 정말 아무리 돌이켜 봐도 너무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을 시간을 보낸 그 시험에서 소수점 차이로 떨어졌을 때, 더 이상 도전할 기운도 용기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남은 것은 나 자신의 무능력과 한계에 대한 절망과 분노 뿐.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내 안에 화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고, 이 화를 풀어내지 못하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커다란 십자드라이버를 움켜쥐고 눈에 보이는 민법 교과서를 미친 듯이 찍어 내리다 손아귀가 찢어지는 날들이 이어진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한 편의 여행기이면서 동시에 원래라면 결코 알 수 없는 다른 누군가의 전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이 세상에서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사람은 이런 부분에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또 이런 부분에서는 나와 다른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안고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특유의 담담하고 나긋나긋한 문장은 정은애 작가님의 전쟁을, 그 전쟁을 대하는 태도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줍니다.

 

5. 깊이가 있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고>의 장점은 다루고 있는 여행지도, 그 안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사유도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고 각각의 깊이가 있지만,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입니다. 가벼운 휴양지에서 오지나 순례길까지, 마을과 도시와 산과 바다, 내밀한 개인적인 고민부터 사랑, 가족, 생명의 무게, 삶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가 담겨 있지만 결코 과잉되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 안에서 독자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 놓은 것만 같습니다. 

 

정은애 작가 소개


책을 구입한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너무 늦게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애써 묻어두고 있었던 과거의 상처도 한 번 끄집어 내 보고, 즐거웠던 여행의 기억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네요. 진실로 아름다운 존재인 정은애 작가님의 문장 하나를 마지막으로 책 리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언제나 하루하루 매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면 좋겠지만, 살면서 그렇지 못한 순간은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훌쩍 어디론가 떠날 여유는 도저히 없고, 그렇다고 하루하루 버텨내기에는 버겁다고 느껴질 때,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고>를 읽으며 잠시나마 마음의 여행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그대의 아름다움을 그대만 모른다. 그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완벽한 존재인지 그대만 몰라.p.67.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고

“세상엔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오감으로 느끼고 태어난 것에 감사하게 되는 일, 나를 빚어 생을 선사한 이에게 감사하게 되는 일, 여행이란 다름 아닌 이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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