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간의 정함이 있는 계약
일반적으로 특정 기간을 정해서 계약을 하는 경우 관행적 혹은 관용구 느낌으로 별다른 의사표시 없이 계약 종료기간이 도래했을 때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계약서에 정해 놓게 됩니다. 연간 단위 계약같이 기간을 정해서 계약은 했지만 별 특이사항 없으면 계속 이어갈 생각이라면 자동 연장 조항을 넣게 될 것이고, 애초에 딱 그 계약기간까지만 하고 더 이상 이어갈 생각이 없거나 계속 이어가도 될지 애매할 때는 명시적으로 자동 종료 조항을 넣기도 합니다.
자동 연장 조항은 “계약 기간 종료 시 별도의 통보가 없는 경우 계약은 자동 연장되는 것으로 한다.” 라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고, 자동 종료 조항은 “전항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본 계약은 종료한다.”라는 내용을 말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1개월 이전에 서면에 의한 의사표시” 같은 추가적인 조건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계약의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경우라면 그 계약 기간 만료로 계약이 종료되는 것이 기본이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계약서와 달리 시간이 되었든 업무가 되었든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렇게 추가적으로 더 명확하게 계약 종료 시점에 더 이어갈 것인가 끝낼 것인가를 추가로 기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식은 근로계약에서도 많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파견직이나 기간제 근로자와 같이 2년의 사용 기간 제한이 있거나, 과연 이 사람을 정규직 전환해 주는 것이 맞을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처럼 명확하게 일단 계약 기간 만료로 종료를 명시해야 하는 경우에는 자동 종료 조항을 넣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그냥 관행적으로 자동 연장 조항을 기본 서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회사가 계약 종료 시점에 계약을 종료하고 싶은 사정이 생겼는데 미처 챙기지 못하는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2. 근로계약서상 계약기간 자동 연장 조항의 해석에 관한 판례
이번 대법원 판례는 이러한 자동 연장 조항의 해석에 관한 내용입니다. 헬기조종사인 근로자가 산불방제 헬기사업팀에서 근무한 경우인데 문제는 이 근로자가 교육훈련 평가 결과 항공종사자 자격이 취소되어 근로계약상의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사안입니다. 여기에 더해 부당해고 문제가 엮여 있는데, 원심인 고등법원에서는 회사 측에 유리하게 ‘근로계약상 정해진 근로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적용되는 규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근로자 측에 유리하게 ‘근로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을 추가하는 것은 처분 문서인 이 사건 근로계약서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에 반한다.’고 함으로써 딱히 계약서상 자격 상실의 경우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자격 여부와 무관하게 자동 연장 조항은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
3. 대법원 2022. 2. 10. 선고 2020다279951
< 대법원 2022. 2. 10. 선고 2020다 279951 판결문>
이번 판결문 원본을 전부 쓰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서 전문은 별도 파일로 첨부합니다.
1. 사안 개요
- 피고는 2017. 5. 1. 원고를 헬기 조종사로 채용하면서, 근로계약서에 근로계약기간에 대해 ‘2017. 5. 1.부터 2018. 4. 30.까지로 하며, 계약기간 만료 시까지 별도 합의가 없으면 기간 만료일에 자동 연장한다.’고 정하였다.
- 피고는 2017. 12. 21. 원고에게, 사직원이 수리되어 2017. 12. 31. 근로계약관계가 종료한다는 통보를 하였다.
- 원고는 2018. 1. 25. 이 사건 통보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였다. 지방노동위원회는 이 사건 통보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정하였고, 중앙노동위원회는 피고의 재심 신청을 기각하였다. 피고는 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의 취소를 청구하였으나, 이를 기각하는 판결이 선고·확정되었다.
2. 원심 판단
- 이 사건 조항은 그 문언상 당사자 사이에 근로계약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기로 하는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근로계약이 기간 만료일에 자동으로 갱신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는 원고가 적어도 근로계약기간 동안은 항공종사자 자격을 유지함으로써 근로계약상 정해진 근로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적용되는 규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이와 같이 해석하지 않을 경우 원고가 정상적으로 근로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도 근로계약 종료에 동의하지 않는 한 근로계약이 무제한적으로 자동 갱신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이는 근로계약 체결 당시의 당사자 의사에 부합하지 않는다. ② 피고는 산불방제 헬기사업팀을 신설하면서 업무상 조종사 인력이 필요하게 되어, 근로계약 체결 당시 이미 정년이 지난 원고를 피고의 취업규칙이 정한 ‘촉탁직 직원’으로 고용하였다. ③ 원고가 항공종사자 자격증명을 취득하지 못하거나 근로계약기간 중에 그 자격이 취소될 경우, 근로계약에 정해진 근로의 제공 자체가 불가능하며 헬기사업팀의 운용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 그런데 원고는 교육훈련 평가 결과 위와 같은 전제를 충족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므로, 이 사건 갱신거절은 정당하다. 따라서 원고의 청구 중 이 사건 근로계약이 자동 갱신되었음을 전제로 한 부분은 받아들일 수 없다.
3. 대법원 판단
- 계약 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계약내용을 처분 문서인 서면으로 작성한 경우에 문언의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문언의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와 경위, 당사자가 계약으로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 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계약내용을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대법원 1996. 7. 30. 선고 95다 29130 판결 등 참조). 특히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와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그 문언의 내용을 더욱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8다 46531 판결 등 참조).
- 이 사건 조항은 그 자체로 ‘원고와 피고가 이 사건 근로계약의 기간이 만료하는 2018. 4. 30. 까지 별도로 합의하지 않는 한 이 사건 근로계약은 자동으로 연장된다.’는 의미임이 명확하다. 이와 달리 ‘원고가 근로계약기간 동안 항공종사자 자격을 유지함으로써 근로계약상 정해진 근로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만 이 사건 조항이 적용된다.’는 기재는 없다. 이 사건 근로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을 추가하는 것은 처분 문서인 이 사건 근로계약서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에 반한다.
- 이 사건 근로계약의 기간 중에 원고가 정상적으로 근로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피고로서는 그러한 사정이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라고 인정되는 한 원고를 정당하게 해고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조항을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이 사건 근로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된다는 의미라고 해석하더라도 근로계약 체결 당시의 당사자 의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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