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임금인상은 없다. 평생 같은 돈 받고 노예처럼 일해라.
최근 삼성그룹을 포함한 대기업에서 “직급 폐지(축소, 통폐합, 호칭 파괴 포함)”와 “승진연한 폐지”를 주요 “혁신”이라고 말하며 공개했습니다. 그럼 이러한 혁신적인 변화가 인사 측면에서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근로자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1. 직급 폐지
직급 폐지는 기존 사원/기사,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형식으로 세분화 되어있던 직급체계를 아예 없애거나 대외적으로 매니저, 파트너, 프로, 님 등의 호칭 통일로 변경하거나, 사원, 선임, 책임 형식으로 축소 및 간략화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합니다.
대외적으로 이러한 직급폐지는 조직을 가볍게 하고(라이트한 조직), 연공서열과 상명하복의 전근대적이고 수식적인 방식에서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듣기 좋은 말이고, 혁신적이고 그럴듯한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안될 거라는 거 본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회사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 가족을 생각해봅시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누나와 나 동생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연공서열 다 없애고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이전보다 지금이 더 평등한 가족이 될까요? 더 혁신적인 가족인가요? 이전보다 더 나은 가족인가요?
직급이 폐지된다고 해서, 축소된다고 해서, 대외적으로 호칭파괴를 한다고 해서 무언가 회사가 더 평등해지고 자유로워지고 업무 능률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빠른 의사결정과 신속한 대응, 자유롭고 평등하며 창의력 넘치는 업무 분위기는 직급과 호칭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회사라는 그 조직의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개개인의 노력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 영역인 만큼 변화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그러면 왜 직급 폐지를 요즘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 단행하는 것일까요?
인사관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직급 폐지는 인건비 절감에 아주 효과적입니다.
과거에는 호봉제가 일반적이었습니다. 근속년수가 올라가면 호봉이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임금인상의 효과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오르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회사가 인건비에 부담을 느끼게 되면서 이 호봉제는 많은 회사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 호봉제가 없어지면서 같은 직급 내에 있는 한, 전사적인 임금인상 이외에는 계속 같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로써 물가가 오르고, 4대 보험 요율이 오르고 모든 게 다 오르는데 내 월급만 그대로인 슬픈 이야기가 완성되었습니다. 근로자는 계속 같은 돈을 받고 일을 하고, 회사는 잠재적인 인건비 상승을 틀어막고 인건비 절감을 이루었습니다.
2. 승진연한 폐지
승진연한 또는 직급 체류년한이라고 하는 것은 각 직급에서 승진을 위해 최소한 머물러야 하는 기간을 말합니다. 이 승진연한이 충족되어야만 승진대상자로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물론 회사마다 특별승진이라고 해서 특별한 공로가 있는 경우에는 1년 정도 이 승진연한을 단축시켜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 특별승진은 이름 그대로 너무나 특별한 경우라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번에 혁신적인 인사제도로 이 승진연한이 폐지되었을 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겨우 1년 승진연한을 앞당겨주는 특별승진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데 과거 승진연한이 있을 때보다 승진이 빨라질까요? 더 느려질까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회사는 굳이 현 상태에서 현재 직급에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별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으면 그 사람을 승진시켜줄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승진연한도 없어졌으니 3,4년이 지났다고 해서 승진대상자로 올려 승진을 해줄지 말지 판단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몇몇 특이한 케이스를 보여주기 식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단행하기는 할 겁니다.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하지만 절대다수의 근로자들은 더 이상 승진도 불가능한 현실이 펼쳐질 겁니다. 이제 근로자는 계속 같은 직급에서 거의 비슷한 연봉을 받으며 계속 일을 해야 하고, 회사는 또 잠재적인 인건비 상승을 막고 인건비 절감을 이루었습니다.
3. 절대평가
평가제도에 있어서 절대평가가 맞는가 상대평가가 맞는가는 아직까지는 정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회사가 일방적으로 미리 정해놓은 평가등급별 배분률이 실제 직원들의 업무실적과 기여도를 반영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개인별, 팀별, 부문별로 성과도 매년 천차만별이고, 업무실적과 기여도도 제각각입니다. 이것을 상대평가라는 정해진 틀에 욱여넣다 보니 불합리한 평가가 이루어집니다.
위의 승진연한 폐지와 맞물려서, 이제 승진 대상자니까 평가를 잘 주어야 한다는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겁니다. 거기에 절대평가로 변경되면 개인별 성과와 능력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 보다 현실을 반영하는 평가가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 삼성그룹이 시행하는 절대평가에서 볼 수 있듯이, 회사는 거기에 제약을 걸어 두었습니다. 상위 10%만이 최고등급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주 이상적인 이야기겠지만, 만약 하나의 평가 단위에 들어가는 팀의 팀원들이 모두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여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그중 10%만이 그 성과를 온전히 인정받게 됩니다. 나머지는 물론 과거 상대평가보다는 유리하겠지만 그래도 본인에게는 어느 쪽이건 불합리한 결과인 것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또한 더 큰 문제는 경제흐름 등 외부환경의 변화에 따라 회사의 실적이 나쁠 때 발생합니다. 회사의 절대적인 실적이 낮다면 그 안에서 더 큰 문제를 방지하고 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더라도 절대평가라는 명목 하에 모두가 낮은 평가를 받게 만들 수 있습니다. 논리도 깔끔합니다. 회사의 절대적인 실적이 낮으니까요.
물론 이것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회사의 절대적인 실적이 좋을 때 절대평가를 통해 중간 등급을 확 늘리고, 실적이 나쁠 때 절대평가를 통해 중간 등급과 낮은 등급을 확 늘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그 누구도 검증할 수 없는 깜깜이 평가인데요.
이렇게 회사는 평가등급에 따른 인건비를 은근슬쩍 조정할 수 있는 백도어를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건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겠죠.
4. 직무급제
아직까지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언론 등을 통해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직무급제입니다. 즉, 연공서열이 아니라 하고 있는 일에 급여를 매칭시켜서 어떤 업무를 하느냐에 따라 급여 수준을 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직무급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가장 큰 배경에는 연공급제에 따른 인건비 상승과 인건비 부담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직무급제를 도입해서 평생 적은 돈으로 부려먹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직무급제가 도입되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직무급제를 하면 적어도 이전 연공급제보다는 적은 돈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요즘에는 국민간의 갈등을 워낙 조장하고 있어서 MZ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직장인들에게 직무급제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려는 것이 보입니다. 마치 지금 회사에 능력도 없고 일도 안 하면서 월급만 축내는 차장, 부장급들에게 그에 걸맞은 낮은 연봉을 주고, 지금 나처럼 똑똑하고 재능 있고 일 잘하고 성과를 내고 있는 실무자에게 그에 걸맞은 높은 연봉을 줄 수 있는 구조라고 말이죠.
하지만 인사 측면에서 연공급제의 인건비는 애초에 회사에게 유리해서 설계된 구조였습니다. 바로 미래가치라고 하는 급여의 후불적 성격을 이용해서 말이죠.
회사에서 사원급은 일을 배우는 단계이고, 월급값을 못한다고 말하는 높으신 분들이 많으니 사원급은 차치하고서라도, 대리급을 예로 들어봅시다. 대리급은 낮은 연봉에 많은 일을 합니다. 업무에 매칭되게 급여를 받아야 한다면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대리급이 가장 높은 연봉을 받아야 맞겠지만, 연공급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회사가 이렇게 낮은 연봉으로 많은 일을 시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미래가치입니다. 지금 대리급인 네가 이 낮은 연봉을 받고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를 내면 시간이 흘러 차장, 부장급이 되었을 때 일은 편하고 더 많은 연봉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미래의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업무량에 비해 적은 돈을 줄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회사는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승진 인원은 회사에서 그 수량을 철저하게 조절하고 있으니까요. 10명의 대리가 있다고 했을 때, 그 중에서 나중에 차, 부장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2,3명에 불과하니까요. 그렇게 희망고문을 통해 현재는 적은 연봉으로 많은 일을 시키고, 나중에 가서야 그중 살아남은 몇 명에게만 높은 연봉을 주면 회사는 인건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한 셈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직무급제를 말하는 것은, 이러한 미래가치조차 주기 아깝다는 뜻입니다. 인건비가 부담되서 직무급제를 하자고 하는 것이 회사와 경영계인데 오히려 현재 돈이 더 많이 나가는 형태의 직무급제를 운영할까요? 정말로 지금 많은 일을 하고 중요도 높은 일을 하는 MZ세대 실무진들에게 더 많은 돈을 주기 위해서 직무급제를 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절대 아닙니다. 그냥 지금 적은 연봉을 받고, 앞으로도 계속 그 연봉이나 받아먹으라는 겁니다.
결국 회사가 말하는 혁신은 효율을 말합니다. 이 효율에는 인건비도 포함되며, 인건비가 효율화된다는 것은 근로자들에게 불리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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