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판결에서 주요한 쟁점이 되었던 내용은 1) 규정에는 재직자 기준이 없었는데 실제로는 재직자 기준으로 상여를 지급한 경우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2)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기존에 노사 합의가 있다고 볼 수 있었고,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에 신의칙 위반이라서 소급적용까지는 해 줄 필요가 없는지 여부 두 가지였습니다.
앞선 글에서는 1) 통상임금성에 대해 정리해 보았고, 이번 글에서는 2) 신의칙 적용에 대해 정리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사실관계
(1) 현대중공업은 재직자 기준이 없는 정기상여금 연 800%를 운영했습니다.
기간 상여금 : 짝수 달 100%씩 총 600%
연간 상여금 : 100%,
명절 상여금 : 설·추석 명절 각 50%씩 100%
현대중공업의 급여 세칙에는 재직자 기준이 없었고 퇴직자에게 일할 계산하여 지급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2) 다만 실질적으로 기간 상여금과 연간 상여금은 퇴사자에게 일할 계산해서 지급했지만, 명절 상여금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퇴사자에게 일할 계산해서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3) 현대중공업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였습니다.
(4) 현대중공업은 이제 와서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봤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보고 소급 적용해 달라고 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2. 대법원 판결 – 신의칙 적용의 제한
민법 제 2조 1항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신의성실의 원칙 즉, 신의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신의칙은 일반원칙이며, 근로기준법과 같은 강행법규는 당사자 간에 합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강행법규 위반에 대해서 신의칙을 이유로 대응하는 것은 강행법규라는 법 취지에 위배됩니다. 예전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서 대법원이 신의칙을 이유로 강행법규인 통상임금을 배제한 것이 비판받는 이유입니다.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기초로 임금 수준을 정한 경우, 근로자 측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할 수 있다.
이번 현대중공업 판례는 예전 갑을오토텍의 신의칙 판결을 부정하는 취지는 아닙니다. 다만 그 신의칙 적용의 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해서 아무때나 적용할 수 없게 제약을 두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신중론의 판결은 사실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5다217287 판결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여 신의칙에 위배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번 판례는 이 신중하고 엄격한 판단과 관련하여, “기업이 일시적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하였다면 그러한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을 주장할 수 없다.”는 기준을 정한 판결입니다.
앞으로 법원에서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위기”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대법관의 성향과 정권의 성향에 따라 오락가락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번 판례는 어쩌면 반쪽짜리 승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강행법규, 강행규정이라는 것은 그 보호대상인 권리를 보호할 가치와 필요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적으로 상대적 약자의 입장에 있는 자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불리한 계약을 맺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이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무조건 지키도록 정해 놓은 법입니다. 결국 회사가 지금까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여 법적으로 반드시 주어야 할 급여(수당)를 제대로 주지 않고 지금껏 그 이익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아오다가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경영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빠져나간다면 그 자체로 법질서가 무너진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아직도 근로기준법에 대해서는 법을 위반하기는 너무나 쉽고, 정당한 권리를 챙기기에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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