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그런 마음은 먹어도 실제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데, 만약 나를 너무 힘들게 한 기분 나쁜 회사를 퇴사하면서 그동안의 내 업무자료를 모두 지워버리고 아무런 인수인계도 하지 않은 채 ‘어디 한 번 엿 먹어봐라’라는 마음으로 퇴사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더러워서 빨리 도망가고 싶은 회사가 있습니다. 이런 회사는 다니는 동안 온갖 불이익과 불공정을 맛보고, 각종 인격모독과 과도한 업무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집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 따위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간혹 회사를 퇴사할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그동안의 서러움과 힘들었던 부분에 대한 소소한 복수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간의 통쾌함은 있을지 몰라도 혹시나 그로 인해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 좀 찝찝한 마음도 있고, 이미 떠나는 마당에 마지막 급여와 퇴직금도 받아야 하는데 혹시나 그런 정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보통은 실행에 옮기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간혹 용감하게 삭제를 저지르는 퇴사자들이 있는데요.
지난 2022년 1월 14일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나왔습니다. 결론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경우와는 조금 다르게 회사 방침상 매월 회사 공용폴더에 자료를 백업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용 폴더에 백업을 하지 않고 하드 디스크를 포맷시켜버린 사안입니다.
하지만 회사에 별도 공용폴더 백업에 관한 방침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보다는 이러한 자료 삭제(포맷)로 인해 업무현황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이 더 중요한 포인트이므로 일반적인 자료 삭제도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법리로 보입니다. 물론 그 대상자의 직책이나 수행하고 있던 업무가 회사 입장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이 삭제(포맷)로 인해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자료 삭제 행위가 업무방해죄로 처벌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판결은 1심과 2심에서도 모두 업무방해죄 유죄가 선고되었고, 최종 대법원에서도 유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상고이유서까지는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대법원 판결 주문을 보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성립에 대하여 부하직원인 피고인들이 대표이사에게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거나, 자료 삭제 행위를 위력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결론이 났습니다.
대법원 2017도16384, 2022.01.14
가. 형법 제314조 제1항의 업무방해죄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한다. 여기서 위력이란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거나 혼란하게 할 만한 일체의 유형, 무형의 세력으로 폭행, 협박은 물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위와 권세에 의한 압박도 이에 포함되고(대법원 2007.6.14. 선고 2007도 2178 판결 등 참조), 반드시 업무에 종사 중인 사람에게 직접 가해지는 세력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자유의사나 행동을 제압할만한 일정한 물적 상태를 만들어 그 결과 사람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업무수행 활동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행위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대법원 2009.9.10. 선고 2009도 5732 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1) 피고인 B, C, D는 피해 회사에서 비교적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각 업무용 노트북 컴퓨터에는 피해 회사의 개발 업무, 거래처 및 자재구매 등에 관한 자료가 있었고, 이는 매월 피해 회사의 공용폴더로 백업되어 왔다.
2) 위 피고인들은 피해 회사 대표이사에 대한 불만으로 퇴사 전 다른 피고인들과 공모하여 동종업체를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매월 피해 회사의 공용폴더에 자료를 백업하도록 한 피해 회사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퇴사하기 전 약 3개월간 백업을 하지 않았다.
3) 위 피고인들은 퇴사 직전 사용하던 노트북 컴퓨터의 드라이브를 포맷한 후 인수인계 없이 퇴사하였고, 그로 인하여 피해 회사 대표이사는 업무현황 파악 등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4) 위와 같은 피고인들의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고, 그로 인하여 피해 회사의 경영업무가 방해되었거나 방해될 위험이 발생하였다고 판단되며, 피고인들에게는 적어도 미필적으로는 업무방해의 범의도 있었다.
다. 원심판결 이유를 앞서 본 법리와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비추어 살펴보면, 위 피고인들이 퇴사 직전에 회사의 공용폴더로 백업을 하지 않은 자료를 인수인계 없이 삭제한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내 월급 지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대재해처벌법과 위험성 평가 (0) | 2022.02.12 |
---|---|
5인 미만 사업장에 취직하면 절대 안 되는 이유 by 건오 (2) | 2022.02.11 |
중대재해처벌법상 유해, 위험요인 체크포인트 (0) | 2022.02.09 |
중대재해처벌법 관리체계 이행방안 규정화 (2) | 2022.02.08 |
중대재해처벌법 대비가 잘 되어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 (0) | 2022.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