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
이번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 중에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라는 제도가 하나 나옵니다. 이 제도는 근로자의 소정근로시간과 실근로시간의 차이 또는 연차휴가를 계좌에 적립하여, 적립된 시간에 대해 근로를 면제하고 휴일 또는 휴가로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독일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나름 유명한 제도입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시절 노동법 학과 수업에서도 들은 것 같은 기억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 7~8년 전 노무사 준비를 할 때도 들어본 적 있는 제도입니다. 독일에서는 꽤나 극단적으로 마치 원기옥 모으듯이 이 근로시간을 저축해서 은퇴시점에 몰아 사용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도에 당시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의 대표 발의로 근로시간 저축휴가제 법안이 제출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통과는 되지 못했고 그동안 별 언급도 없이 기억 속에서 잊혔다가 이번 대선 공약을 통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입니다.
2. 근로기준법상 보상휴가제
기존 근로기준법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하나 있는데 바로 보상휴가제입니다. 보상휴가제는 근로자의 연장, 휴일, 야간근로에 대해 가산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그와 동등한 시간을 부여하는 휴가제도를 말합니다. 이 제도의 특이한 점은 가산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갈음하여 부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과근로시간에 50%를 가산해서 휴가를 부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2시간 연장근로를 했다면 3시간의 휴가를 부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근로기준법
제57조(보상 휴가제)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제51조의 3, 제52조 제2항 제2호 및 제56조에 따른 연장근로ㆍ야간근로 및 휴일근로 등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갈음하여 휴가를 줄 수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가 필요한데 많은 회사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회사와 직원 그 누구도 별로 원하지 않는 계륵 같은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우선 이 보상휴가제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직원의 근태를 꼼꼼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연장, 휴일, 야간근로를 계산해서 그 1.5배의 시간만큼 보상휴가를 부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미 많은 회사들이 사무직 포괄임금제나 퇴근 시간 자체를 관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어차피 공짜 야근을 마음껏 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주 52시간 제한이나 연장수당 등 미지급의 위험을 안고 이를 꼼꼼하게 기록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추가로 일을 시킨 시간만큼의 휴가를 주는 것도 아까워 죽을 것 같은데 심지어 50%의 시간을 가산해서 더 쉬게 해 줘야 하니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쓰레기 같은 제도가 있나 싶은 겁니다. 게다가 초과근로시간을 관리하고, 거기에 50%를 가산해서 부여하고, 그 부여한 시간 중 근로자가 사용한 시간을 차감하는 등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시스템이나 인력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딱히 회사에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더 복잡하고 돈만 들어가니까 싫은 겁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이미 소정근로시간 내에 다 처리하지 못할 양의 일을 시켜서 야근을 하고 휴일, 야간근무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초과된 시간에 50%를 가산해서 나중에 쉬라고 해도 언제 쓸 수 있을지 의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연차휴가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마당에 적립된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쉬고 돌아오면 회사에 대체 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은 내가 쉰만큼 쌓여 있는데 대체 어떤 직원이 마음 편히 쉴 수 있을까요?
3.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는 도입될 수 있을까?
이 제도가 도입될 수 있는지는 2016년 해당 법안이 발의되었을 때와 과연 지금이 유의미하게 달라졌는지를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회사 입장에서 근무시간을 더 철저하게 관리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부담이 크다는 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또한 마이너스 통장과 같이 선사용의 개념도 있고, 휴가시기 선택권이 근로자에게 있게 된다는 점에서 회사 입장에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이득이 없는 제도입니다. 근로시간 저축 계좌를 통해 연차수당이나 초과근로수당이 절약된다고는 하더라도 이미 연차 사용 촉진제도나 온갖 불법적인 방법으로 애초에 제대로 그 수당을 준 적이 없다 보니 사실 절약 효과도 얼마 없고 2016년이나 지금이나 이러한 회사의 수당 미지급에 대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강하게 관리하고 처벌하지 않으니 역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회사 입장에서는 법이 생기면 나쁠 것은 없지만 좋을 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마이너스 통장 개념처럼 휴가를 선사용할 수 있다는 측면은 있지만, 그만큼 초과근무 등으로 그 사용한 시간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휴가로 대체되는 만큼 수당의 감소로 급여 수준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회사는 공짜 야근을 마음껏 시키고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차피 못 받을 돈 이 제도를 통해 쉴 수라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 대체휴가제에서 근로자들이 그 제도에 별 관심이 없는 이유는 이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미 일이 많아서 초과근로를 하는 상황이고, 누가 일을 대신해 주는 것도 아니며, 연차도 마음껏 못쓰는데 시간을 쌓아두기만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부분입니다.
결국 2022년 현재에도 이 제도는 회사와 직원 그 누구에게도 별 메리트가 없는 제도입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기존의 연차수당이나 초과근로수당과 달리 이 저축 계좌제가 도입되게 되면 퇴사 시점에 과연 금전적인 정산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부분도 의문이 있습니다. 이 퇴사가 아예 은퇴 시점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직이 된다면 아직 전 직장에서 근로시간 저축 계좌에 남아있는 시간이 있는데 이직한 회사 사정으로 그 시간을 다 쓰지 못하고 빨리 입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사정이든 퇴사 시점에 다 쓰지 못하고 남은 저축 시간이 있는 경우는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간에 대해서 정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정산이 이루어진다면 벌률상 현재 시점의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정산되어야 할 것인데 연봉 4천만 원대의 신입사원 때부터 쌓아온 근로시간을 연봉 7천만 원대 과, 차장 시점에 퇴사하면서 정산한다고 하면 그 금액 차이에 대해 과연 기업들이 가만히 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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